“오늘 모여 기뻐함은 기목사를 환영함 우리주의 본을 받아 사랑마음 표하세 편히 다녀왔으니, 주의 은혜 감사하여 기쁜찬미 합시다."
천민출신으로 게일의 전도를 받고 참된 기독교지도자로 거듭난 고찬익, 그가 서울 연동교회의 초대장로가 되어 1907년 스위스에서 가족들과 함께 다시 돌아온 게일선교사를 환영하는 노래이다. Vanguard라는 책(게일 저)을 통해 알려진 고찬익의 삶과 신앙은 기독교가 구한말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생명의 종교로 다가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100여년전 암담한 조선말기 사회에 기독교는 한국민족의 희망으로 자리했고, 천민들을 시대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내는 엄청난 힘을
지녔다. 그리고 그 격변과 변화와 한 가운데 외국선교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열악한 한국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국왕을 지켰고, 교육과 서양의술을 한국에 소개했고, 한국사회의 근대화에 초석을 놓았다. 어쩌면 지난 100여년의 한국근현대사의 변화와 발전의 기폭제를 선교사들이 제공했는지 모른다.
수많은 재한 해외선교사들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선교사연구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같이 익히 우리에게 익숙한 몇몇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리고 중요 선교사들을 선별하는데 1차적 복음의 전파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수행했는가를 종종 기준으로 삼았다. 때문에 조선민족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관심을 선교사들의 중요도를 정하는데 강조점을 두지 못하기도 했다. 이것이 이후 선교사 배척운동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63년 캐나다 토론토의 알마Alma라는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게일은 의학을 공부한 후 1888년 25세의 나이에 한국에 선교사로 왔다. 그리고 40여년간 한국민과 한국교회를 위해 그 어느누구보다 헌신했다. 게일은 한국역사를 사랑해서 조선시대 한국민담을 영어로 번역했고, 한국인이 그리 사랑하는 춘향전과 구운몽을 영어로 번역하여 세계에 소개했다. 한국어의 사전을 편찬했고, 자신의 이름을 딴 성경완역본을 출간했다. 천로역정과 같은 기독교 문학을 한국말로 번역출간했다. 한국의 유산과
기독교를 연결하고, 선교지 한국과 세계를 연결한 게일의 사역덕분으로 많은 한국인들이 자존감을 얻었고, 기독교와 민족을 동반자로 여겼다.
이러한 게일의 삶과 신앙은 세계선교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한국기독교와 한국선교사들이 어떻게 선교지와 그것 사람들을 접할 것인지에 대하여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본인은 게일의 원 저작들을 중심으로 우리가 세계선교와 그곳 민족의 역사를 어떻게 신앙적으로 연결해 줄 것인가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