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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 북인도선교의 이해와 도전
수 5:00 @ Blanchard 274 [한]
 
배정희 인도에서 10년째 선교사역을 펼치고 있는 배정희 선교사는 한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93년 인도선교사로 파송될 때까지 여의도 순복음교회 CAM 대학선교회에서 캠퍼스 사역을 하였고 인도 Jawaharlal Nehru 대학에서 사회학으로 M.A.와 M.Phil 과정을 마치고 현재 박사과정 중에 있다.










지금 인도는 움틀 거리고 있다.
1947년의 독립 후에 많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인도를 이해하는데, 부분만을 알고 있다. 매스컴으로 비추어진 인도는 가난한 슬럼가(slums)의 모습과 신비해 보이는 다양한 종교들, 현존하고 있는 카스트제도 그리고 길거리를 누리고 다니는 소 떼의 행렬 그리고 우리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인도가 있기에, 인도를 잘못 이해하였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각 분야에서 인도에 대한 정확한 관심을 기울이며, 이해를 도모하고 있으며, 선교 역시 효율적으로 인도선교의 역사 진행을 위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1947년 독립 당시 4억의 인구가 1987년에는 두 배가 되었고, 현재 2003년 7월 11일자 Hindustan Times 신문 보도에는 10억6천만이 넘는 인구가 되었으며, 전체 인구의 50%의 이상이 빈곤 속에 살고 있으며, 26%의 도시 인구는 슬럼에서 지내며, 31개의 도시는 백만 이상의 인구이다. 2020년에는 13억의 인구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힌두(Hinduism)는 81.3%이며, 2억의 소를 숭배하며, 3만3천의 우상을 신으로 모시고 있고, 12.5%의 인도의 모슬렘은 인도네시아의 모슬렘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모슬렘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모슬렘이 100%라고 말을 해도 과하지 않는 지역이라고 하는 카시미르와 잠무 지역에는 물론 극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있겠지만, 계속되는 파키스탄과의 분쟁으로 모슬렘 선교에 대하여 간과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 외 시이크교, 자이나교, 불교, 그리고 타종교의 분포를 제외하고, 인도 기독교인을 2.4%로 추정하고 있는데, 특별히 미복음화된 북인도는 많은 선교사와 개척자들이 절실히 요구되는 지역이다.
약 200년전에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 선교사 이후 현재까지 하나님께서는 자민족 선교사들과 토착교회들을 부흥케 하셨다. 개신교는 6만이 넘는 빌리지(villages)에 교회가 개척되었고, 2천4백만이 넘는 교인과 67435개의 개신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21세기의 선교를 행진하는 길목에서 만나는, 인도는 우리에게 맡겨준 소망의 땅이다.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전쟁 후에 모슬렘을 향하여, 한국 교회와 선교단체는 다양한 방법으로 전략을 시도하고 있는데, 가까이 근접하고 있는 북인도는 지리적인 여건이나, 지역연구 그리고 선교적인 시각으로 볼 때, 미복음화된 지역이므로 미래의 인도선교에 큰 변화의 기회를 가져오게 할 것이다.


인도선교를 위해서 무엇을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인도의 상황과 선교의 역사 배경을 이해하므로서 인도선교의 대한 바른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이다.
18세기 후반 개신교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개척하고, 사회변화에 대한 개혁을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서, 사티(sati: 남편과 함께 화장하는 제도), 여유아 살해(남아 선호 사상으로 인함), 사원 매춘(devdasi), 여아 조혼 제도 등의 사회변화에 대한 운동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또한 기독교가 제국주의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으며, 스탠리 존스(Stanley Jones)는 인도의 자유운동을 지지하므로, 인도를 통치하는 영국총독부와 대항하기도 하였다. 이런 많은 시도에 선교사들을 국가의 구원자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830년에 파송을 받고 인도에 온, 알렉산더 더프(Alexander Duff)는 인도에 영어 교육을 시행을 시작하였고, 사회 계몽의 선구자의 역할을 하였다. 많은 초기의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인하여, 1921년까지 개신교는 인도 인구의 1.5% 되었으며,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와 카스트 밖의 사람들에 대하여, 안식처와 교육을 제공하게 되었다.
또한 개척 선교사들은 인도 정부가 낮은 카스트에게 개방되지 않는 학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교육을 시키게 되었다. 미국인 선교사들은 북인도의 펀자비, 힌디, 우르두어 그리고 마라티어의 최초의 사전들을 편집하고 발행하게 되었다.
18세기의 초기의 선교사들은 사회제도의 변혁과 교육에 대한 공헌이 있었고, 이러한 기초로 선교사업은 진행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초기 선교부들은 분열과 불화로 인도인들에게 한 목소리로 복음을 전하는 데에 힘을 모으지 못했다. 또한 선교사들의 선교보고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선교사들의 우월감으로 본국에서는 한쪽으로 치우친 선교 사역보고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기독교를 서양 종교나 서구인의 모습으로 인식된 잔재는, 현재까지 인도 타종교인들에게 남아 있기에, 기독교인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의 하나가 된다. 또한 선교사들은 인도의 뿌리 박혀 있는 토착문화에 대한 일체감이 부족하였기에, 기독교인들에게 영어식 이름을 고집하여 왔고, 전통에 익숙한 인도인들에게 찬송가의 리듬이나, 익숙한 인도 옷에서 서양식의 옷으로 입게 하는 것들의 인도 관습에 대한 주의 깊은 배려가 없었다. 이런 모습에 대한, 스티븐 네일(Stephen Neill)이 1934년에 기록한 내용이 있는데, 오늘날 선교하는 우리들 역시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선교사들은 그들의 개종한, 기독교 개종자들이 가능한 영국인과 같이 되길 바라고 있다. 인도 기독교, 그 자체는 외부 종교로 인식되어진다.”
또한 선교사는 현지 동역자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입장인데, 현지 고용인을 채용하여 관리하려는 사고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도 숙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식민주의에 선두에 동역하는 종교로 인식하며, 선교사의 우월의식에 비추어 지는 관료주의는 많은 선교사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인도인들에게 현재까지도 선교사는 식민지 정부와의 결탁으로 인도인들은 기독교로 개종시키려는 종교라는 오해가 있다.
인도 선교를 위한, 서양 선교사의 성공과 실패의 분석은 오늘날의 인도선교에 관심을 가지는 교회나 선교사들에는 유익이 될 것이며, 이 시대에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인도 선교에 대한 장애와 도전들을 정리하며, 한국교회가 효과적으로 인도선교 전략에 함께 나누며, 개선시키며, 효과적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인도선교의 장애와 도전을 무엇일까?

1) 인구증가와 미복음화된 북인도 지역
1947년 독립 후에 인도 교회는 크고 작은 핍박과 사회적인 불이익과 어려움에도 교회는 건재하였다. 2001년도 기독교에 대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1951년의 기독교인 통계는 2.8%에서 50년이 지난 2002년도의 통계는 2.18%인데, 이렇게 감소된 이유에 는 기독교 인구가 급속한 인구 증가율을 따라 잡을 수 없었던 이유로 분석할 수 있겠고, 1975년 인도 정부가 선교사들에게 문을 닫아 버리는 결정을 내린 이후 교회가 자생력을 가지고 선교하지 못했으며, 인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의 선입견의 영향을 간과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 수십 개의 선교 단체들과 교회들이 세워졌다.
인도의 28개주의 지역마다 언어와 문화와 전통이 다르며, 지역에 대한 구분도 언어학적, 지리학적, 사회학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동인도의 콜카타(Kolkata), 서인도의 뭄바이(Mumbai), 남인도의 첸나이(Chennai), 북인도의 뉴델리(NewDelhi)의 수도를 중심으로 인도 기독교의 분포와 활동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해안으로 연결된, 콜카타, 몸바이, 첸나이는 일찍이 초기 선교사들로 하여금 복음이 전해졌으므로, 일단은 현지 교회와 현지 선교 단체 그리고 유능한 현지인 사역자들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나 현재 북인도는 지리상으로 구분할 때, 뉴델리(NewDelhi)를 포함하여, 히마찰 프라데쉬(Himachal Pradesh), 하리야나(Haryana), 라자스탄(Rajasthan), 웃딸 프라데쉬(Uttar Pradesh), 펀잡(Punjab), 웃타란찰(Uttaranchal), 찬디갈(Chandigarh), 잠무. 카시미르(Jammu , Kashmir)의 인구가 약 3억이 넘지만, 펀잡 주의 기독교인 1.1%를 제외하고는 평균 0.1%의 기독교인들이 있다.
인도선교에서 있어서, 인도 출신의 자국 선교사가 미복음화된 인도를 향한 선교를 하는 선교사가 44000명이 넘어 섰다고 하는 것은 새로운 인도선교의 모습이다.

2) 카스트제도와 굳게 뿌리 박힌 전통과 문화
인도의 신분제도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며, 하위카스트(sub-caste)를 분류한다면, 3000개의 이상이 넘는다고 하는데, 지금도 카스트의 제도는 결혼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각자의 종교 속에 뿌리깊게 내려진 내부자치제도는 인도 헌법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큰 힘이 숨겨져 있다. 전통 문화에 관습과 관례를 지키는 인도인의 사고를 말씀으로 변화를 시켜야 할 것이다. 카스트로 인하여 불평등하게 내려지는 조치들을 우리는 흔히 볼 수가 있는데, 지난 7월25일 구자랏트 주에 달리트 출신의 청년 라만 차툴바이 반카(Raman Chaturbhai Vankar) 는 힌두 사원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상위 카스트 청년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서, 죽은 일이 발생했는데 경찰이나 사회사업가들의 말에 의하면 이런 일은 정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며 2003년 8월11일자 신문 The Times of India에 보도되었으며, 작년 웃딸 프라데쉬 주에서는 신분이 다른 남녀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동네 청년들이 캥거루재판(인민재판)을 열고 목을 밧줄로 묶어 동네를 돌며 끌고 다녔지만, 아무도 만류하지를 않았다. 그 외에 사회적으로 상.하위카스트의 갈등의 문제는 비일비재하다.
1990년도 경제 개방과 함께 인도사회는 또 다른 계층인 Class가 형성되어 나가고 있다. caste와 class의 개념은 인도 사회 속에 연결되어 있는 사회구조 관계를 이해하면서, 카스트와 클라스와 전통과 문화에 대한 변증을 바르게 복음과 연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 힌두와 모슬렘의 갈등과 기독교의 핍박, 그리고 정치적인 상관 관계
인도헌법은 종교무차별주의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1998년 3월 28일 바즈파이(Vajpayee)수상은 BJP(Bharatiya Janata Party: Indian People's Party) 내각이 출범하게 되었다. 또한 BJP 전신인 RSS(Rashtriya Swayamsevak Sangha)는 이상적 힌두국가 설립으로 목적을 둔, 힌두교의 사회문화단체인데, BJP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RSS 출신이기에, 힌두정부의 출범으로 시작된, 1998년부터 현재까지의 핍박의 사례들은 무수히 나열할 수가 있다. 비하르 주의 교회 방화사건, 수녀들의 강간사건과 불이익의 제도들이 전인도에서 하루에 500여건의 신고가 들어 온 적도 있다고 한다.
2000년도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아요디야 사원은 바브리 모스크에 파괴에 대한, 내무장관과 각료 3명을 해임으로 시작되어, 바즈파이 수상의 힌두교을 두둔하는 발언이 확대되어 정당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원인을 보면 16세기 무갈 제국부터 아요디야 라는 지역에서 힌두교는 템플을, 모슬렘은 모스크를 짓겠다는 두 종교의 갈등은 1992년에 유혈사태가 일어났고, 2002년 2월27일 구자랏트 주의 고드라의 열차 방화사건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받게 되었고, 계속되는 사원들의 테러 사건으로 일어나는 인명피해와 이에 따라서 파키스탄, 방글라데시까지 힌두교와 모슬렘의 갈등이 확산되었다.
그러기에 종교에 대한 모든 반응은 민감하여 되었고, 기독교인까지도 실감할 수 있는 현실의 어려움으로 다가왔으며, 2002년 10월에 남인도 타밀나두 주의 반개종법안(Anti- conversion Bill)이 통과되어서, 개종 시에 부담되는 형벌과 벌금 그리고 신원조사로 현지교회와 선교단체는 금식을 하며 기도를 하기도 하였다. 2003년 4월부터 구자랏트는 기독교인의 신원조사를 실시하고자 하였고, 이에 기독교 단체들도 대항을 하기도 하였다.
내년 2004년도에 있을 선거 이후에, 어느 정당이 정권에 이양하는가에 따라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 억압받는 달리트(Dalit)와 사회적인 불이익
달리트라는 단어는 소외된 사람, 억눌린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인도 인구의 약 25%가 달리트에 속해 있으며, 8%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에 속하여 있다. 달리트들은 인권에 대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찾으며, 힌두에서 타종교로 개종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2001년 11월4일은 뉴델리에 100만의 대규모 집단 개종을 위한 모임이었지만, 힌두 세력의 압력으로 10만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고, 교회와 선교단체들도 참석하였으며, 달리트들이 불교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자신의 의사에 맡겼지만, 달리트들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암베르 카르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교로 개종을 하였다. 이런 집단 개종은 힌두의 뿌리의 움직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압박받는 달리트들의 고통은 인도사회에 크게 인권의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5) 헌신된 사역자의 발굴과 자립
인도 선교의 자립은, 헌신된 사역자 발굴에 따라서 비례할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제자화된 사역자를 양육하는 일일 것이다. 과거 한국 선교는 제3세계 선교지와 제한 지역의 현장에서 지향한 선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프로젝트화(project)선교였지만, 오늘날은 제자화하는 선교의 패러다임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도 프로젝트화하는 선교로 인해서, 선교사와 현지 사역자와의 재산권으로 관계의 어려움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예를 들어서, 몇 년동안 다른 선교단체로부터 지원을 받다가, 자립이 어렵게 되면, 또 다시 새로운 선교단체나 교회에 후원을 위해서 찾아 헤매는 악순환이 인도 사역자들에게 있었던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인도 선교를 자립을 할 수 있는 것은, 헌신된 영적 지도자의 비젼과 확신으로 출발할 수 있는 것이기에, 사역자를 발굴하는 것은 자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개신교 200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자립이 된 교회가 거의 없다시피한 인도교회에 대하여, 여러 가지의 의견들이 있겠지만, 선교사는 장기간의 계획을 세워서라도, 현지 사역자가 자립을 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며,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6) 전문성과 다른 은사를 지닌 사역자들의 팀 사역
선교에 있어서 패러다임은 바뀌고 있다. 인도선교의 큰 목표를 위해서는 우리는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각자의 은사를 개발하고 전문성을 가지고, 팀 사역을 이루어 나가야만 할 것이다. 인도는 많은 어린이들이 방치되어 있다. 전문적으로 해야 할 사역의 분야는 다양하다. 어린이 사역, 청년 사역, 문맹퇴치 사역, 의료 사역, 컴퓨터 사역, 영상 매체 사역, NGO를 통한 사역 등등, 효율적으로 은사대로 분담하여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면, 서로가 힘이 될 것이다.

7) 도시선교 및 상위 계층을 향한 선교
복음이 수용성이 있는 빈곤층도 선교를 하여야 하지만, 이제는 다양한 상위계층을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인도385개의 도시는 10만으로 증가하고 있다. 189 도시는 2%가 되지 않는 기독인이 살고 있다. 가장 높은 도시 인구는 93%인 뉴델리이며, 낮은 도시 인구로는 히마찰 프라데쉬(Himachal Pradesh)로 9.8%이다. 이렇게 도시로 이주하는 인구에 도시선교의 슬럼 사역과 상위층을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을 연구하며, 함께 공유하며 도시선교와 상위층 대상을 위한 선교를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인도선교에 대하여 품어야 할 비젼은 무엇인가?

개신교의 인도 선교가 18세기에 출발에서 21세기의 문에 들어섰다.
이제 인도 선교 역사는 200여 년이 되었고, 우리는 2세기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새로운 장을 여는 인도 선교를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에 선교사들의 사역 대상의 대부분은 불가촉천민이였으며, 극히 적은 숫자만이 상위층이였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다. 선교사들은 불가촉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인간답게 살아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 사회개혁을 하였으며, 학교와 병원을 세우며, 구제와 다양한 사회사업 그리고 NGO 활동을 펼쳐 왔다. 그 기조로 오늘날까지 인도 선교가 계속 진행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교 역사를 통해서 교훈으로 삼을 것이 있다.
가시화된 선교 사역에 비하여, 인도 현지에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들이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을 현지인들에게 묻기보다는,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에게 영향력 있는 모델을 보여 주지 못한 책임으로 돌리고 싶다. 물론, 인도의 상황들은 겹겹이 둘러싸인 제도와 사회구조 그리고 뿌리박힌 종교 등의 문제가 있고, 이로 인하여 기독교인들 중에서 영향력이 있는 각 계의 하나님의 종들이 나오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20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영향력이 있는 지도자를 찾을 수 없다는 냉혹한 비판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사명과 비젼이 한국교회에 있다고 한다면, 효과적인 인도선교를 위해서 한국교회는 자질 있는 한국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육신의 사명감이 있으며, 훈련된 한국선교사가 모델이 되면, 현지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로 세워 질 것이다.
또한, 세계의 두 번째 인구의 나라에서 곧 첫 번째로 되어질 인도는 많은 선교사들이 파송받게 될 것이다. 카스트, 계층, 다양한 구조, 제도 등으로 다양한 사역을 해야하는 실정이다. 전략이 필요하며, 은사대로 사역을 감당하며, 팀 사역으로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하나의 큰 힘을 모으며 인도선교를 감당할 수 있도록, 교단과 교파와 선교단체를 초월하여서, 독특한 인도선교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하며, 선교 현실의 상황을 직시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인도선교의 비젼을 품는 한국교회는 인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5000년 이상의 역사와 세계관 속에 젖어 있는 사고를 가진 인도사람들을 기경하기에는 인내가 요구된다. 그러기에, 한국교회는 파송한 선교사와 선교사의 사역의 열매에 대하여 인내하여야 하며, 파송된 선교사는 현지인 동역자들에 대하여 인내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는 인내하시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셨고, 훈련하시며, 성숙의 모습으로 세워 가시고 계신다.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도 인내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끝까지 품으셨음을 보여주셨다. 인내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인도선교를 사랑으로 출발하며, 인내로 선교를 감당하며, 쉬지 않는 기도만 있다면, 한국교회는 21세기의 인도 선교 역사의 장을 새롭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