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교지에서 생기는 일들이 항상 승전보만이었으면 좋겠으나, 좋은 소식 만큼이나 안 좋은 소식도 있다. 사랑을 베풀어 주었는데, 사랑을 받은 사람이 감사하기는커녕, 등을 돌리고, 더 나아가서는 칼날을 겨누고 나올때는 억한 심정이 솟아오른다. 케냐의 격언 중에 "당나귀의 감사는 발길질이다"라는 말이 있다. 몇차례의 발길질 감사를 받았다. 그것은 치명적이었다.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혼돈 사태의 원인을 보면 대개 세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는 선교사의 자질이다. 인간적인 자질, 목사로서의 자질, 선교사로서의 자질 등을 곱아보면 쉽게 점수가 나온다. 즉 선교사 선발과정에 큰 문제가 있다. 무자격자나 부적격자를 적당히 얼버무려 선교지로 내보내는 것은 준비 안된 사람에게 의사면허를 주어 환자의 생명을 다루게하는 일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서도 샌다"는 충청도 격언이 들어맞는 것을 많이 보게된다.
둘째는 본국 선교부의 잘못된 제도의 문제이다. 근대 한국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30년이 지나는 지금까지도, 선교 실무자의 대부분이 선교와는 거리가 먼 무경험, 문외한이다. 본부와 현장 간에 한번 골이 생기면, 그것을 메꾸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당하는 것은 현장의 선교사이다. 실무자는 사장이 되고 현장 선교사는 종업원이 되어 명령과 복종의 관계를 강요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선교사는 문제 인물로 찍히고, 왕따 당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교단 선교부의 경우 이러한 병폐가 막심하다.
세 번째 문제는 후원 교회 책임자(담임 목사)의 무관심이다. 교회는 돈만 보내면 다 되는 줄로 생각한다. 후원받는 선교사가 신나는 소식만 전해오기를 기대한다.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무엇이 진짜로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안좋은 소리나 실패한 소식은 알면서도 쉬쉬해버린다. 교회 안에서 자신의 입장이 난처해질까봐서다. 선교부에 대해서도 여간해서 불편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 깐깐한 목사, 법 따지는 목사 소리를 듣다가 정치적으로 상처를 받을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선교사의 수가 12,000명에 이른다. 국가순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미국 다음으로 세계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나라이다. 선교를 상식적으로 수행할 때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전문화해야하고, 비정치화 해야한다. 사람쪽에서의 선교의 주체는 후원교회나 선교부가 아니라 바로 선교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선교지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집안에서 우물안 개구리들이 벌이는 탁상공론은 이제 정리해야할 때다. 황소의 배는 개구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크기보다 몇 백 배나 더 크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