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부족한 사람을 한인 세계
선교사 대회에 참석하게 하시고 이 자리에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세계 각처에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헌신하며 수고하시는 선교사님 앞에 감히 부족한 사람이 간증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여 주신 대회장님과 모든 임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선교사님들에게 하나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한국 부산에 살고 있으며 중국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입니다.
1947년 충남 금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지금 중국 길림성 조선족 자치주에 살고 있는 조선족 한센 형제들을 선교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14세 때 한센병(나병 또는 문둥병)에 걸려, 온 몸이 상처가 나고 전신이 마비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모든 삶을 포기했으며 동네 마을에서 쫓겨나고 학교 공부도 중단해야 했으며 깊은 산골짝에 움막을
치고 죽음을 기다리는 처참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몹쓸 병이 들었다고 어머님은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갔으며 큰 형수님은
시동생이 병들었다 하여 집을 나가고 형님은 병든 저를 끌어안고 울부짖고 화병으로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으며 온
가족이 소외당하고 고통을 받았습니다. 가장 괴로운 일은 시골 동네 아이들이 산골짝 움막에 찾아와 돌을 던지고 놀려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수 차례 죽으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매일같이 눈물로 시간을 보내면서 몸은 악화되어
얼굴 모습이 흉하게 변해갔습니다.
1962년 가을 어느 아주머니가 움막에 찾아와 소록도에 입원하라는 말을 듣고 소록도에
가게 되었는데 그 당시 소록도에는 6,000여명의 한센 병자들이 입원하고 있었으며, 모두 강제 수용되어 미래가
없는 적막한 생활이었습니다. 입원한 환자들은 병이 악화되어 눈이 멀고 손이 상하고 심한 상처가 있었으며, 다른
나라에 온 느낌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자살하는 사람이 몇 명씩 있었고 배도 고팠습니다. 남생리 바닷가에서 매일 육지만
쳐다보고 울었습니다. 주일날 아침이었습니다. 교회 종소리가 울리고 환자들이 교회가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따라가 보았습니다. 약 3,000여명이 모인 공회당에서 찬송소리가 났으며 처음으로 가 보는 교회인지라 어리둥절했고
새롭게 보였습니다. 나는 교회 안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눈도 멀고 손가락이 없는 한센 환자들이 손뼉을 치며 힘차게
부르는 찬송과, 환희에 찬 얼굴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기도는커녕 원망만 하고 내가 왜 하필이면
이런 병에 걸렸단 말인가 하며 강대상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으며 조상원망도 하고 하나님께 원망도 했습니다. 설교도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은 근심 걱정은커녕 찬송을 부르며 박수를 쳤습니다.
하루는 하는 일 없이 바닷가에서 자살하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교회에 가서 혼자
울고 하나님께 병을 고쳐달라고 수 시간 기도했습니다. 그 때 제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꼈고, 갑자기
평온하고 원망이 사라지고 주님께서 꼭 껴안아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성경을 보다가 요한복음
9:1~3절 말씀을 보면서 크게 깨닫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다. 부모의 조도 아니요, 또한 그 소경의 죄도 아니요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저 함이라’는 말씀을 읽고 희망을 얻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그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역사를
보고 저 자신도 분명히 고침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새벽마다 기도했고,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교회에 가서 강대상 앞에 앉아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 당시 소록도에는 희망이 없었고 모두가
죽음만을 기다리는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식량이 모자라 배도 고팠고 치료제인 DDS를 주었는데 간호원과 의사가
부족하여 1개월 분약을 한꺼번에 주어 하루 1개씩 투약하라는 지시로 먹었으나, 치료제인 DDS는 독약으로 10개만
먹어도 죽는 독한 약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한꺼번에 10개 이상을 먹고 자살하는 한센
형제가 많았습니다. 소록도 입원을 한지 8개월이 지났으나 건강회복이 되지 않아 고통스러웠으나 저는 매일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어 하루는 오스트리아에서 두 분의 수녀님을 소록도에 파송하여 나이어린 젊은 환자들을 특별
치료하여 주기로 하였는데 약 250여명 되는 어린 환자들을 우선 치료하여 주었습니다. 두 분의 수녀는 저를 진찰하고
피를 빼더니 검사 후 너무 약을 많이 먹어 약물 중독에 걸렸다며 고급 영양제와 약을 조절하여 주었고 세밀하게 치료를
하여 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치료가 되기 시작했으며 매일같이 점점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몇 개월 후 머리가
다시 나고 막힌 코가 트이고 몸이 가벼워졌으며 빠른 속도록 치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두 분을 소록도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저는 8년 동안 깨끗이 치료를 받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여 사회로 퇴원하게
된 것입니다.
37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수녀는 소록도에 살며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병을 치료받아
사회에 복귀했으나 다시 실망을 했습니다. 고향에 찾아가도 반겨 줄 사람이 없고 한센 병력자 인식이 잘 안되어 도저히
상대를 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 깨끗함을 받았는데 흉터가 남아있고 흔적이 있어 어울려 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부산에 살면서 누가 알까봐 조심스러웠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장 큰
기쁨과 위로를 주셨는데 저의 아내를 얻게 된 것입니다. 저의 식구는 한센 병자도 아니고 건강인 입니다. 모든 것을
신앙으로 초월하여 제가 한센 병력자인 줄 알면서도 결혼하여 현재 1남 2녀를 두게 되었고 모두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저에게 가정을 이루게 하시어 생활에 기쁨을 주신 것입니다.
1986년도에 부산 산성교회에서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는데 목사님께서 누가복음 17:11~17절
말씀을 가지고 감사드린 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말씀을 하셨고 저는 그 설교를 듣고 크게 뉘우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니 문둥병자 10사람이 소리
높여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10사람을 깨끗이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아홉 사람은 다 숨어 버리고 누가 알까봐 피하였으나 오직 한 사람이 찾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사례하고 감사드린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한 사람에게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하시고 찾으셨고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 하시며 섭섭해 하시는 대목을 말씀하신 기록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님 설교를 듣는 순간 크게 뉘우치고 회개 하였으며 나 자신도 하나님 은혜로 깨끗함을 받은 사람인데 숨어버린
9사람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감사드린 한 사람이 되고자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 후로 지난 날 어려웠던
일과 하나님 섭리하심을 깨달아 수기집 “절망을 이긴 세월”을 쓰게 되었고 1992년 10월 22일 출판 감사 예배를
창녕 부곡에서 전국 100여 곳 한센 정착촌 형제와 목사님들 6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 출연 간증과 42번가의 기적에도 출연 간증한
바 있으며 이 책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 했습니다. 1996년 11월에 미국 휴스턴 탈로우드 교회 백예철
목사님의 초청으로 간증집회에도 간 바 있고 샌프란 시스코 콩고드 교회에도 간 기억이 있습니다.
1999년에 부산 교회 복음 신문사에서 선교 국장을 한 바 있는데 중국 조선족에게
책 보내기 운동에 참여하여 수기집을 보내고 한?중 서로 사랑협회를 만들어 문화교류를 하고 한국측 회장이 이종태
목사님이시고 중극측 회장이 한석윤 소년보사 사장인데 사단법인체로 저는 정착분과 위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연변
방문을 하면서 한센 병자 수용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으며 놀랍게도 같은 민족이고 동포인 분들이 한센병으로
고생하는 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 모습이 30~40년 전 한국의 모습과 같아, 매우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었고 마을에서 쫓겨나 움막생활을 하는 환자가 있고, 소외당하여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며 쓰레기 더미에 은신하여
사는 분도 보았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어릴 때 소외받고 움막 생활을 하였던 기억을 상기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이들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여 그들을 도와주고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지금까지 4년 동안 자비량으로
활동하였으며 18차 방문을 하면서 의약품과 의류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같은 민족으로 어느 분은 독립 투사도 있었고, 그 자녀도 있었습니다. 길림성에는
50여 명이 수용된 병원이 1개 있고 대부분 집에서 재가 치료 환자로 움막이나 외딴집에서 가장 비참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흩어져 살기 때문에 한 사람 찾는데도 시간이 매우 걸리며 조선족 한센 형제는 400여명이 있고 중국 전역에는
수백 만명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가장 소외되고 낮고 천한 분들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다면 이 분들을 위하여 도와주고 복음을 전하고 구원시키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대한 민국에는 90여 곳의 한센 형제 정착촌 마을이 있는데 약 10만명이 있습니다. 집에서 치료받은 분들과 합한
통계입니다.
40~50년 전 외국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오셔서 길거리에 있는 한센 형제들을 우선 돌보고 먹을 것을 주고 처소를
마련하여 주어 약을 주고 치료하여 주며 복음을 전하여 줌으로써 모두 새 삶을 찾고 하나님을 믿는 자녀가 되었으며
100% 기독교인이 된 것입니다.
국가 한센 복지 정책이 세계에서 가장 잘 되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선교사님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한국의 한센 형제들이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여 세계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헌금하여 태국 한센 형제 선교를
위하여 교회를 40여개 세우고 신학교도 만들었으며 80만 태국 한센 형제 구원과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중국에 관심을 가져 지구의 마지막 선교지라고 생각되며 중국 선교는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하여 북한에 사는 한센 형제 선교도 해야 될 것입니다. 중국에 한국형 정착촌을 만들어 그들에게
삶의 질을 높이고 사람답게 살게 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남은 여생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배운 것도
별로 없고 목사도 아니며, 부산 고신대학교 선교 대학원 전문인 선교 훈련 과정을 이수한 전문인 선교사입니다.
성경 열왕기하 7장 3절 이하를 보면 한센 병자 4사람이 사마리아 성을 구원했던 것처럼 가장 낮은 자를 통하여
지구의 구석구석을 복음 전파하는 도구로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한센병은 무서운 병이 아니며 간단히 치료 할 수 있습니다. 조기에 발견하면 2~3번
투약으로 완치도 됩니다. 성경에 한센 병에 관한 기록은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이 등장합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저는 신앙적으로 가끔 생각해봅니다.
육신적으로 한센병의 증세는 병에 걸리면 제일 먼저 피부 감각이 없어집니다. 마비가 되는 것입니다. 불에 닿아도
뜨거움을 못 느끼고 차가운 얼음에 닿아도 차가움을 느끼지 못하고 누가 꼬집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입니다.
신경이 마비되고 무감각한 것입니다. 심하면 머리가 빠지고 손이 오그라들며 피부가 거칠어집니다. 육체적으로 쓸모없이
망가지는 증세입니다. 이것이 한센 병의 육체적 증상입니다.
심령적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성령의 뜨거운 불이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와도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신령한 목사님과 부흥 강사님의 설교를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한다면 심령적인 한센 병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유능한 강사님들의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도 새로운 각오와 불타는
선교의식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한센병에 걸린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이번 선교 대회에 뜨거움을 느끼고 온 지구상 곳곳에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남은
여생, 최선을 다하시는 선교사님들이 되시고 특히 중국 조선족 한센 형제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고 후원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의 선교 홈페이지는 www.him.ok.kr 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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