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한인세계선교대회>셋째날>주제강연 IV
 
"한국교회 100년사의 선교적 고찰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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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길 /GMS 이사장, 시은소교회 담임 6대에 걸쳐 면면히 계승된 한국 초대교회 신앙의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칼빈신학교, 총신신학대학원, 대만아세아선교대학원(Th.M.)을 나와, 미국 South California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박사 학위(D.D.)를 수여했으며 1975년 개척한 수원 시은소교회를 대형교회로 성장시킨 동시에 GMS총회세계선교회 이사장으로, 스칸디나비아 선교회장으로 세계선교사역에도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목회자영성훈련원, 수도성경신학원 , 수원 평신도선교훈련원 등의 대표이며 CBS(기독교 방송) 부흥선교단 공동회장이다다. 저서로「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도우시는 하나님」, 「교회론」, 「봉사론」 등이 있다.

1. 서 론

21세기 세계 선교의 흐름은 큰 변화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전 세계가 복음화와 선교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선교환경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현대 선교는 북미와 영국 등 서구 교회가 주도해 왔으나 오늘날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기독교의 축이 서구 세계에서 제 삼 세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선교사 파송은 매우 어려운 세계의 경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비서구권 국가로부터 3배 이상 증가했다. 2000년에는 비서구권 선교사가 전체의 55.5%로 서구 선교사 수를 훨씬 능가했다.
2000년도 한국교회는 제 삼 세계 선교단체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력한 선교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하는 선교 환경 속에서 서구교회의 대체 선교세력으로서 한국교회의 100년 선교 역사와 선교 현황 및 향후 과제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한국 선교 어디까지 와 있나?

1) 복음의 도래와 한국 교회 초기선교
19세기 이래로 서구의 개신교회는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모토로 하여 복음전파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선교운동을 주도한 것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개신교회였는데, 이중에서도 한국에 대한 선교는 1866년 영국 토마스(Robert J. Thomas)선교사로부터 시작되어 1884년 9월에 입국한 의료 선교사로서의 의사 알렌(Horace N. Allen)과 교단의 선교사 직분으로 파송 받은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아펜젤러 두 선교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는 1885년 4월의 부활 주일 아침에 인천항을 통하여 한국에 첫발을 디딤으로서 한국 선교의 시작을 이루게 되었다.
한국 땅에서의 복음 선교는 장로교와 감리교라는 두 흐름이 주도를 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이한 것은 그 단체에 속한 선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서로 공의회를 만들어 선교지에 대한 적절한 연구와 배분을 통하여 불필요한 경쟁을 지양하고 낯선 이방의 땅인 조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함게 나누는 모습을 가졌던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타민족이나 타 지역을 향한 선교적 사명과 전통이 있었다. 그 결과 복음을 받은지 23년 만인 1907년 장로교회의 독립노회가 조직되자마자 한국최초의 선교사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로 파송한다. 1909년 최관홀 목사를 시베리아로, 1910년은 김지근 목사를 만주로, 1912년에는 최성주 목사를 북간도에, 같은 해 손정도 목사를 시베리아로, 1918년에는 김현찬 목사를 러시아로, 1921년 정재덕, 최수영, 배형식 목사를 만주로 파송하는 등 상당한 선교적 열심을 일으켰다. 한국교회의 선교적 열심은 이후에도 중국과 몽골 등을 향하여 불같이 일어났다.
일제 식민 통치하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직 역사가 짧은 한국 장로교회는 63명의 선교사들을 주변국에 파송했으며, 감리교는 33명을, 성결교회는 12명, 침례교회가 12명을 파송했다. 총 1902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의 수는 119명에 이른다. 또한 이 시기의 한국교회 선교는 해외에 흩어진 동족 선교에 큰 관심을 가지는 특징을 보이며, 교단 별로 총 255명의 교포 선교사를 8군데의 선교지에 파송했다. 또하나의 특징은 교단이 선교의 주체 세력이었다는 점이다.

2) 2차 대전 이후의 한국 선교
한국교회의 선교운동은 특히 한국 전쟁 기간 동안 주춤하였다. 그러나 공산화된 중국 본토를 포기하고 한국 교회는 새로운 선교지를 탐색, 태국과 대만에 최찬영, 김순일, 계화삼 목사를 파송하였고, 태국선교는 진정한 의미의 제 2차 대전 이후 타문화권 선교였다. 그후에도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브라질, 멕시코, 미국 등으로 선교사를 보내기 시작하여 1973년에 한국교회가 파송한 선교사가 234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선교 사명을 활발히 수행해온 선교조직들이 있었다. 조동진 박사가 지휘하는 국제선교협력기구(KIM), 김활란 박사가 이끄는 이화여자 대학교 선교회 등이 있었다. 이 시기에 각종 초교파 선교 조직들이 활성화 되었는데 그 이유는 교단의 비효율적인 선교행정과 역량 부족 때문이었다.

3) 고속 경제성장과 현대 선교운동
1980년대는 한국교회는 선교사를 받는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로 크게 발전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한국 선교회의 증가는 1979년 21개 선교기관이 26개국에 93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1982년에는 47개의 선교기관이 37개국에 323명을, 1989년의 선교사 총수는 1,178명이었다. 1992년 2,576명, 1994년 3,272명, 1996년 4,402명으로 증가했으며, 1998년 5,948명, 2004년 현재는 170개국에 12,000여명의 한국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는 한국교회 선교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제 2위의 선교사 파송 대국이 되었는데 이렇게 한국교회가 중심 선교세력으로 성장한 요인으로는 70년대 교회의 급성장, 놀라운 경제 성장, 국가의 개방 정책, 능력있는 선교회 지도자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3. 한국선교의 문제점과 과제

100여년의 선교역사를 가진 한국 교회의 선교는 이제 세계 2위의 파송대국으로 발전,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 선교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였지만, 현지 교회와 한국교회로부터 비판을 받는 몇 가지 근본적인 이유들이 있다. 첫째는 한국교회의 선교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교사들이 일을 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 때문이다. 둘째는 선교사 자신들이 문화, 언어 그리고 상황화에 대해 잘 준비되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셋째,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타문화권 사역의 기초를 닦아야 할 선교사들에게 너무 큰 사역의 결과를 기대하기 때문에 한국교회 선교가 부실해 질 수 밖에 없었다. 한국 교회는 선교의 양적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는 반면 이제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반성하고 선교사 파송 대국에 걸 맞는 선진 선교로의 질적인 성숙을 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를 안고 있다.

1) 선교사의 전략적 배치
선교사의 전략적 배치에 관한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 선교사의 92.2%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선교사의 도시 집중 현상은 선교사역의 전략적 배치 부재와 선교자원의 중복성을 짐작케 한다. 물론 주요 선교사 파송국 대상 1위가 필리핀에서 중국으로 바뀐 것은 한국 선교가 이제는 선교사 배치를 개척 선교쪽으로 전략적으로 해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기는 한다. 그러나 한 국가내 선교사의 전략적인 적절한 배치는 아직도 요원한 상황이다.
또한 선교지 선정도 파송기관의 주도비율(36%)보다는 개 교회나 선교사 개인이 주도하는 파송경향(58%) 때문에 선교자원의 중복투자와 낭비는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교기관, 후원교회, 선교사 그리고 선교현장 간의 협력과 역할 분담 등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바른 파송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2) 선교지 상황에 대한 이해와 연구
한국교회의 선교 사역 대상국은 매년 증가해 왔으며 이제 170여개국이나 된다. 한국 현대 선교 초기에 주류를 이루었던 중남미와 아프리카, 유럽은 점차 줄어들고 아시아권이 45.5%로 아시아권이 한국선교의 주요 선교지가 된 것은 고무적이다. 아시아는 한국의 유사문화권으로 한국 선교사들이 보다 전략적, 효율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중동도 5%가 넘는 것을 보면 이제 한국 선교가 개척 선교 방향으로 나아감을 알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화된 선교지는 그만큼 한국 선교사가 선교지 문화와 언어, 상황화 등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를 안겨준다. 한국교회 선교사들이 당면하는 문제들은 언어 24.9%, 경제문제 21.7%, 영적 슬럼프 13.3%, 자녀교육 11.1%로 나타난다. 언어 문제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데, 언어 훈련은 곧 선교지 문화 적응 훈련과 직결된다. 그 나라의 사역 전략 지식이 미비할 때 선교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이 현지 문화와 언어에 익숙해져 복음을 현지 문화에 적절하게 전할 수 있을 때까지 가시적인 결과들을 요구하지 말고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3) 선교지별 긴밀한 협력의 필요
한국 교회의 선교대상국이 170여개 국이라는 것은 곧 선교지별 긴밀한 협력과 팀 사역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방대한 선교 사역지에서 한국 선교사들의 각개 전투식 사역은 선교자원과 재정의 낭비, 전문성의 결여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한국선교의 부실을 낳게 된다. 160여개 한국의 선교단체들이 파송한 12,000명의 선교사들이 서로 경쟁심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비전과 분명한 목적의식에 따라 서로 팀으로 협력사역할 때 선교사역의 시너지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4) 선교사에 대한 목회적 관리 시스템의 필요
한국교회는 선교사를 대량 파송하는 놀라운 양적 성장을 한 반면 내부적으로는 빈약한 회원관리 체제를 가지고 있어 선교사역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급성장에는 성장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선교사 숫자의 증가는 파송교회와 선교회들이 선교사들을 돌보고 지원해야할 일이 많음을 의미한다. 한국 교회 선교가 선진 수준의 선교가 되려면 이제는 파송된 선교사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그들의 필요를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는 지원 정책과 선교사에 대한 목회적 관리가 배려되어야 한다.
한국교회 선교사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중 경제문제 21.7%, 영적 침체 12.3%, 자녀교육 11.1%라는 통계를 볼 때 선교사의 목회 배려가 시급함을 알 수 있다. 선교사들은 슈퍼맨이 아니다. 타문화권에서 사역은 치열한 영적전쟁과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그 가운데 선교사들은 정신적, 영적, 정서적 어려움도 겪으며 타문화권에서 자녀를 양육해야하는 이중적 부담도 갖고 있다. 특히 선교사 자녀교육 문제는 선교사 배치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선교사 자녀 교육에 대한 배려도 요구된다. 자녀교육 때문에 선교사들이 도시에 집중 거주하는 성향이 늘고 오지의 미전도 종족에게 배치되는 것을 꺼려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선교사에 대한 목회적 관리 체제의 성숙은 한국 선교 발전을 위한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4. 결 론

한국교회의 선교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타문화권 선교에 대한 열정과 헌신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일제 식믹지 압제와 6.25 전쟁과 IMF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으면서도 한국 선교사들은 증가했다. 현대 선교 30년이란 짧은 역사 가운데 미국에 이은 제2위 선교사 파송 대국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쇠퇴해가는 서구 교회를 대신할 선교세력으로 한국을 준비시키고 사용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한국 선교가 한 때 지나가는 선교운동이 될 것인가, 아니면 21세기 선교를 주도해 나가는 선교운동이 될 것인가는 현재 당면한 발전 과제들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본다. 선교 단체들과 교회들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들이 여러 가지 있으나 무엇보다 한국 선교사들의 전략적 배치를 위한 선교정책이 단행되어야 한다. 선교사, 선교단체와 현지 교회들 간의 상호 협력 정신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그리고 복음을 타문화권에서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선교사들의 선교지 이해와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끝으로 많은 해결 과제들이 있지만 한국 선교사 인적 자원에 대한 전문적인 관리와 보호는 한국 선교를 세계 속의 선교로 업그레이드 하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