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한인세계선교협의회 세계선교소식 한인세계선교세계선교정보 한인세계선교대회 븍미주한인세계선교

 KWMC 16 Elliots Alley, Valley Cottage, NY 10989, USA   845.267.4159  ㅣ kwmc@kwmc.com  

 

 

 
 
 
   

 
 

제2차 한인세계선교대회 > 넷째날 > 주제강연

 [넷째날] 주제강연 - "21세기를 향한 한국교회의 지도자상"

 

 
 

신성종  / 서울 충현교회 담임목사

 
 

KWMC1992 제2차 한인세계선교대회 > 넷째날 1992년 7월 30일(목)

주제강연 - "21세기를 향한 한국교회의 지도자상"

 

1. 지도자 결핍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교회

아마도 지금의 한국교회만큼 지도자들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은 때도 일찌기 없었다고 생각된다. 과거에는 몇몇 지도자만 있으면 다들 존경하고 따랐기 때문에 그것으로 족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화되면서 영웅이 없는 시대에 살게 되었고 그래서 새로운 여러 형태의 지도자형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바로 이런 지도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지도자란 한마디로 말해서 사람을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역지를 선정하여 훈련하고. 저들에게 자원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조직화해서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도자는 언제나 우선순위를 알아야 한다. 따라서 목회에 있어서 지도력은 필수적인 요건이다. 그러나 지금 불행하게도 개신교의 지도력은 말이 아니다. 인구 20%에 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개신교의 교회안에는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훨씬 작은 카톨릭보다 대정부 및 대사회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손봉호 박사는 꼬집고 있다.

그러면 왜 한국교회는 그렇게 많은 성도들을 갖고 있고 목사들의 수가 수만명에 달하는데 지도자들이 결핍하다는 말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것은 지도자로서의 자질인 비전, 강한 소명의식, 계획성. 추진력, 희생과 기도, 겸손, 위기관리 등을 가진 사람들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교권주의자들로 인해 순수한 지도자들이 뒤에 가리워져 있고, 개신교의 개교회주의적 성격 때문에 그 기회가 없는 것도 그 한 이유인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권위주의에서 개성존중의 민주주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이 변화 속에서는 지도자에게 유연성이 필요하다. 과거처럼 독재적이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자유방임적이어서도 안되며 참여적인 지도자여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지도력은 개발되어야 하는데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중간지도자들이 큰 지도자로 자라기가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지 개발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냐 개발되지 않고는 온전한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이 개발될 수 있도록 교회정치가 보다 민주적이어야 한다.
 

2. 교회에 지도자는 왜 필요한가?

엄격하게 말하면 교회에 지도자는 주님 한 분 뿐이시다. 그러나 그 주님을 바로 섬기고 따라가려면 교회 안에 목사와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더구나 교회처럼 헌신을 전적으로 요구하는 집단에서는 지도자의 필요성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에서는 지도자 없이도 아니 지도자로서의 자신이 부족해도 돈만 있으면 그냥 따라가게 되어있으나 교회는 그렇지 않다. 그런 점에서 헌신을 요구하는 교회에서는 지도자가 더 필요한 것이다.

지도자가 부족하면 교회는 자유방임적으로 흐르거나 아니면 도전적 행동이 생겨지면서 교회가 분열된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교단 안에서의 교권싸움이나 교단간의 비협조 등은 바로 지도자 부재에서 생겨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응집력은 바로 이 지도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다음 몇 가지의 어려운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는 권위의 문제이다. 옛날처럼 권위주의가 사람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화력을 통해서 목표를 성취해가는 시대이기 때문에 카리스마적이 아닌 다음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지도자의 참된 권위는 말씀전파에 있고 신앙에 의한 모범적 삶에 있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권력경쟁의 문제이다. 노회와 총회에는 자연히 권력이 있고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권력경쟁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여기서 목회자들은 노회나 총회에 관계없이 개교회주의로 나가든지 아니면 참여하여 권력경쟁에 개입되든지 해야하는 상황이다. 바로 여기에 양심적인 목회자들의 고민이 있다. 셋째는 목회성공에 대한 유혹이다. 여기서 시간관리와 건강문제가 생긴다. 거의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건강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목회성공이란 강박관념에서 오는 것이다. 넷째는 실수를 범했을 때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혹이다. 목회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실수를 범한다. 이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여 교정하지 않으면 결국은 교회를 떠나야 하는 결정적 과오를 범하게 된다. 다섯째는 사적인 이익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를 개인의 소유물처럼 착각해서는 안되는데 많은 목회자들이 열심과 이것을 혼동하고 있다.
 

3. 21세기의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을 갖겠는가?

중요한 것은 오늘의 특징을 바로 파악해야 우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말할 수 있다. 이원설 박사는 그의 「다원화사회의 영적 지도력」이란 글에서 (1) 역사변화의 가속화 현상 (맥헤일), (2) 총체적 변화현상 (나이비트), (3) 지구촌적 변화 (맥루한), (4) 질적 변화현상 (토플러), (5) 불확실성 변화 (맥코믹) 를 지적하고 있다.

손봉호 박사는 그의 글에서 앞으로의 모습에 대해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합리적이 될 것이고 교회도 그 영향을 받을 것이다. 둘째는 사람들은 어느때보다도 더 쾌락을 추구할 것이고 물질중심이 될 것이다. 셋째로 사회가 철저히 개인주의적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원설 박사는 앞으로의 사회를 다원화 사회로 규정하고 세 가지의 유동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첫째는 횡적유동인데 이것은 도로와 통신의 발달과 함께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둘째는 종적유동인데 횡적유동의 가속화와 함께 각 계층 사이의 유동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21세기에 있어서는 한국교회의 지도자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
 

4. 한국교회는 어떤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가?

플라톤은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았다. 하나는 배에 속한 사람, 즉 육적 욕구를 따라 사는 사람, 둘째는 가슴에 속한 사람, 즉 용기만 가지고 사는 사람, 셋째는 머리와 같이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지도자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라고 본다. 버틀러는 관심을 중심으로 세 가지 유형의 지도자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주변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도 없는 사람, 둘째는 주변의 변화를 보면서 남들만 비난하는 사람, 셋째는 주변의 사정을 보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행동화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 유형이 아닌가 한다.

로버트 데일은 지도자에는 교환형의 지도자와 감동형의 지도자가 있다고 (지도자로서의 목사, 11-12) 하였다. 교환형 지도자는 서로 주고 받는 사람을 말한다. 가치를 흥정하고 교환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런 유형의 지도자는 사람들을 잘 이용한다. 그러나 참으로 필요한 지도자형은 감동형의 지도자이다. 왜냐하면 이런 지도자는 피지도자의 필요를 공급하여주고 그를 감동시켜 따라오게 한다. 교환형의 지도자는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지만 감동형의 지도자처럼 자라게 하지는 못한다.

바르트는 「한 손에는 성경, 다른 손에는 신문」이란 말을 하였는데 이것은 미래의 교회지도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성경과 현실의 어느 한 쪽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한국교회에는 어떤 지도자들이 필요한가? 손봉호 박사는 여섯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로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교회지도자들은 말씀대로 살아서 신자들에게 모범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판단이 공정하고 모든 일에 신실해야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넷째로 비합리적인 권위주의는 앞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다섯째로 다른 사람과 협동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로 다음 지도자를 훈련시킬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도 지도자의 유형을 지적하였거니와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가 있다.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다음과 갈은 지도자들이 있다. 첫째는 전제적 지도자. 둘째는 자유방임적 지도자, 셋째는 온정주의적 지도자. 넷째는 참여적 지도자가 있다. 그러나 이련 식의 분류는 각각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큰 도움이 못되기 때문에 동기에 따라 나누는 것이 더욱 좋을 것 같다. 풍기에 따라 보면 첫째는 육체적 욕구 충족형의 지도자가 있는데 제3세계의 지도자들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많다. 둘째는 사회적 욕구 충족형. 예컨대 권력에 눈이 어두운 독재자가 있다. 셋째는 사명감 추구형의 지도자가 있는데 예를 들면 처칠, 드골 갈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다음은 영적 욕구 추구형의 지도자가 있는데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바로 그런 지도자들이고, 한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도 바로 이련 유형의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도력이 천부적인 것인가 아니면 훈련에 의해 개발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쟁을 해왔다. 이에 대해 필자는 지도자는 천부적인 면도 없는 것은 아니나 교육과 훈련을 통한 개발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개발에는 사무엘처럼 자기 훈련의 방법도 있고. 모세처럼 인간경영의 방법도 있다. 모세는 목적을 설정하고, 혼자서 하지 않고 합리적인 조직과 적재적소의 원리. 후계자를 양성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또 다윗처럼 위기관리를 잘 하는 방법도 있다.

참된 지도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역사의식이 있어야 하고, 비전과 추진력, 희생이 있어야 하며 위기를 잘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계획을 잘 수립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계획의 수립과정은 목표의 설정, 기회의 탐색, 계획 천체의 설정, 대체한의 결정, 평가 및 행동과정의 선택, 파생계획의 수립 등 일곱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교회의 지도력에는 두 가지 차원의 기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과업에 역점을 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목적의 달성, 목표의 성취라는 과업에 역점을 두어야 하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란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교제와 조화, 응집력을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요소 중에 하나를 희생시키게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제임스 빈스는 「기독교 목회에서의 지도력」이란 책에서 아주 간단하게 지도력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지도력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하면서 그 증거로서는 성장의 부재. 불화, 단기목회, 방관자적 신앙, 사역을 하지 않는 교회 등을 들고 있다. 그는 지도자의 자질로서는 영성을 첫째로 들었고. 둘째는 성숙한 인격을 들었으며, 셋째는 온후한 인간관계, 넷째는 사랑을 지적하였다. 지도자의 역할로서는 섬김, 즉 청지기 정신이라고 하였고, 지도자의 과업으로서는 일을 가능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전이 있어야 하고, 경청할 줄 알아야 하고, 팀을 구성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이 되도록 활력소를 불어 넣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우선순위의 균형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맺는 말

한국교회의 앞날은 전적으로 지도자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퍽 두려운 것은 지금 그대로는 지도자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적지 않게 있다. 따라서 사람을 키우는 일에 한국교회는 보다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해야 하리라고 믿는다. 지도자는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능력을 밭은 사람들이 개발에 의해 보다 훌륭한 지도자로 커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16 Elliots Alley, Valley Cottage, NY 10989, USA   l  T/845-267-4159  l  F/845-267-4169  l  kwmc@kwm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