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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한인세계선교대회 > 셋째날 > 주제강연

 [셋째날] 주제강연 - "이민교회의 선교적 사명 "

 

 
 

이상현 / 프린스턴신학교 석좌교수

 
 

KWMC1992 제2차 한인세계선교대회 > 셋째날 1992년 7월 29일(수)

주제강연 - "이민교회의 선교적 사명"

 

1. 선교의 목적과 토대

선교는 교회의 근본적 사명이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교회이기 위해서는 하지 않을 수 없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 바로 선교다.

이것은 삼위일체 신앙과 기독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나님의 본질이 ”주는 사랑" 즉 이웃으로 향하는 자세이다. 성부는 생자를 사랑하고 성자는 성부를 사랑하며. 성부와 성자에게서부터 오는 사랑이 성령이다. 어면 개체에 갇혀 있을 수 없고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역시 하나님의 “오심” “우리와 같이 하심”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개체 자신에 만족하는 갇혀진 단체일 수 없다. 기본 소식을 가지고 온 세계로 나가는 일, 즉 선교는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면 선교의 목적과 토대는 어디에 있는가? 마태복음 28장 18-19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계자를 삼고”라고 쓰여 있다. 지상명령은 기독론과 연결된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로부터 모든 권세를 받았으니 ‘그러므로’ 선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의 목적과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며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와 토대를 두고 있다. 선교의 이유와 원동력과 방법.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 마음대로. 우리가 원하기 때문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근본적으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라는 사실이 선교의 근거이며 목적인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선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는 것에 궁극적 뿌리를 두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시간과 공간에 재현 또는 표현되는 것이 라 할 수 있다. 선교는 결국 하나님의 선교며 우리의 선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재현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선교란 이렇게 방대한 규모와 갚은 토대 또 원동력을 가진 실패할 수 없는 그러고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2. 이민교회의 선교의 장(field)

위에 이미 선교의 포괄성과 깊은 토대를 언급하였다. 니케아 신조에서도 포괄성올 교회의 근본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자신의 선교에 토대를 두고 있는 선교는 이민교회의 선교사명에 대하여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1) 크리스천 이민 자신의 내적 선교의 장.

인간 마음 밖에 있는 우주 공간도 한없이 큰 것이지만 인간 내의 용간도 못지 않게 무한하다. 선교의 포괄성을 생각할 때 우리 각 개인의 내적 공간을 향한 선교를 무시할 수 없다.

첫째, 크리스천에게는 누구나 내객 자아를 향한 정돈과 성화의 선교가 있다. 아무리 훌륭한 기독교인이 라도 그의 마음과 태도 속에는 아직 그리스도의 마음과 조화되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점차 그리스도의 뜻에 맞는 생각, 가치관, 그리고 감정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것이 크리스천 이민의 첫째 내적 선교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이민은 또 새로운 자아의식과 인생철학을 수립해야 하는 과업을 대면하고 있다. 나는 이제 Korean-American인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민생활의 목적과 보람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입각하여 풀어가는 것은 이민 크리스천의 중대한 내적 선교과제인 것이다.

하나만 더 언급하면 이민 크리스천의 문화적 선교의 내적 장을 들 수 있다. 한국 또 동양 문화 속에서 좋은 것은 재발견하여 간직하고 서구문화 역시 우리가 평가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 것을 채택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거부하는 중대한 과업이 있다. 기독교 복음에 입각하여 착수해야 하는 이 중대한 문화적 선교의 책임을 이민 크리스천들이 회피해서는 안될 것이다.
 

2) 이민교회의 내적 선교의 장

이민 개인을 초월하여 이민교회를 볼 때 교회 내의 선교의 과업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이민 1세를 향한 선교의 과업이다. 특히 미국에 와서 새로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이민교회이다. 통계를 보면 미국에 도착할 때는 약 50%가 기독교인인데 미국에 온 후에는 70% 이상이 교회와 관계를 가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인들의 20% 이상이 새로 믿은 초신자들이다. 이 분들의 신앙교육은 이민교회가 갖고 있는 가장 급한 교육적 선교의 과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 내에 튼튼한 신앙의 터전이 없이는 교회 밖에서도 건전하고 힘찬 선교를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내의 둘째 선교의 장은 2세들을 향한 선교이다. 미국 사회에서 세속주의, 개인주의, 물질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2세들을 복음에 입각한 가치관으로 선도하는 일은 이민교회 장래를 위한 긴급한 선교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3) 미국을 향한 이민교회의 선교

이제 교회 밖을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이민교회의 첫째 외부적 선교의 장인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미국은 원래 기독교적 사상을 토대로 시작되었었다. 그러나 오늘은 극도로 세속화된 상황 가운데 미국 사회는 윤리와 가치관의 표준이 없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미국사회의 복음화는 한인이민교회의 가장 중대한 선교적 사명 중의 하나이다. 복음선포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사회혁신은 미국 사회를 향한 우리의 선교사명의 양면이라 할 수 있다. 이 사회를 향하여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 이민교회들은 이 과제를 심각하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미국을 향한 선교는 이번 5.29 LA폭동 이후 더욱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그러므로 복음선교를 토대로 한 사회혁신은 우리에게 주어진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
 

4) 전세계를 향한 선교

전세계, 즉 모든 피조물이 교회의 선교의 장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시지 않은 것이 없고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이룩하시려는 목적은 역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향한 선교는 교회의 필수적 사명인 것이다.

여기서 지적할 것은 온 인류와 또 온 자연이 우리의 선교의 장이라는 것이다. 자연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목적을 갖고 창조되었다면 자연환경을 남용하고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작업도 교회의 선교 사명의 일부라 할 수 있다. (롬 8:18-23 참조)
 

3. 세계선교와 이민교회

사도행전 8장 4절에 보면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라고 적혀 있다. 고향을 떠난 나그네들은 어떤 특수한 선교사가 될 소명과 여건을 갖고 있다는 암시가 이 구절에 포함되었다고 생각한다.

1) 첫째, 집 떠난 나그네로서 이민 크리스천은 벌써 집을 떠난 상태이니 어떻게 보면 다른 나라로 선교사로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좀 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향에 있는 사람도 물론 부름을 받고 선교사로 떠날 수 있지만 이미 외국에 와 있는 이민들의 경우는 외국으로 선교하러 가라는 소명이 그 이민 자체에 포함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은가. 이민, 측 나그네의 상황을 외국 선교하러 가기 위한 .. 떠남 .. 을 훈련하는 상태라고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성숙한 이민으로서의 신앙과 자아의식을 갖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그렇지 못하고 아직도 고향을 떠난 외로움과 불안 상태에 놓여있다면 나그네의 상태에서 또 외국으로 간다는 것은 본국에 있을 때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 외국선교는 확실한 믿음과 “고향” 역할을 할 수 있는 교회 (측 보내는, 격려해주는 교회)를 전제로 한다. 이 말은 즉 이민교회가 외국 선교를 열심히 하려면 이민교회 자체가 실속있고 튼튼해야 하며, 또 성숙한 신앙과 확고한 자아의식을 개개인 이민 크리스천에게 넣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하여 아브라함 같이 참으로 부르심에 순종하여 원래의 고향을 떠날 수 있다면 (히 11:8-16 참조) 세계 선교의 길에 오를 수 있는 훈련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2) 둘째, 이민들의 여건은 그들의 상황이 고난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북미의 경우를 볼 때 소수민족으로서 한인이민들은 인종차별, 주변성의식. 뿌리뽑힌 상황. 주류사회에서의 격리와 소외 들 여러가지 아픔을 겪는다.

고난이란 자체는 바람직한 것이 못되지만 선교를 위한 하나의 도구로 선용될 수 있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고난이 없는 사람들이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준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우리 한국이민들은 고난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고난받는 세계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들고 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본다. 한국 민족은 한국에서부터 고난의 민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히 한국교회에게 20세기 말엽과 21 세기의 세계 선교의 책임을 주셨다는 생각도 근거가 있는 생각이다. 한국민족이 고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면 외국에 나와 있는 한국이민들은 더욱 그렇다. 우리가 이민으로서 당한 고난을 세계선교하는 하나의 도구로 혹은 “능력”으로 사용한다면 우리의 이민으로서의 “운명” 속에 있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그만큼 성취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3) 셋째. 이민으로 소수민족의 처지에 있어 본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예민하여지고, 그 예민한 우리의 눈은 외국선교사로서 바람직한 차질이라고 생각한다. 백인 선교사들이 갖고 있었던 가장 큰 단검은 그들의 우월감 또 다른 문화와 민족에 대한 예민하지 못한 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세계선교에 성공하려면 민족적 우월감을 토대로 멋대로 행동하는 식민정책적 사고방식은 철저히 버려야 한다고 본다. 자율성을 강조하고, 애국주의와 특권의식이 강한 현대에 사는 모든 민족들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민감하지 못한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복음을 조금이라도 타협하거나 소국적으로 대해도 좋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굳은 신념과 움직일 수 없는 신앙을 우리가 전하지만, 그 전하는 방법과 태도에는 겸손과 상대에 대한 민감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북미에 살고 있는 우리는 소수민족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감하며 우월감은 벌써 버린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런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그것을 세계선교사가 가져야 하는 하나의 자질로 선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 상처당한 우리이기 때문에 다른 상처당한 사랍들을 동정할 줄도 알고 또 그들이 우리를 쉽게 수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이처럼 선교는 이민교회에 던져진 중대한 사명이다. 먼 훗날 이민교회 역사가 쓰여질 때 사도행전 8 장 말씀과 같이 “미국에 흩어진 한국민족들이 두루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고 기록될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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