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MC1992 제2차 한인세계선교대회 > 첫째날 1992년 7월 27일(월)
저녁선교대회 주강연 - "내가 여기 있나이다"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중심이었습니다. 중세교회는 로마 중심이었습니다. 근세교회는 유럽 중심이었습니다. 20세기는 미국 중심입니다. 지금부터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는 한국교회가 중심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영국의 어느 선교 전문가의 말대로 유럽의 선교상황은 밤 9시가 지났고 미국의 선교상황은 오후 2시 쯤 지났습니다. 한국의 선교는 이제 아침 7시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둘람 동굴의 어둠 속에서 ”하나닝이여! 내 마음임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로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 57:7-8)"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선교의 새벽을 깨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나닝이여!
저희의 마음이 선교에 헌신하기로 확정되었사오니
저희가 노래하고 저희가 찬송하리로다.
국내의 교회들아! 북미주 교회야!
깰지어다, 우리 함께 선교의 새벽을 깨우러 가자.
깰지어다. 우리 함께 선교의 새벽을 깨우러 가자"
이제 한국교회가 발판이 되어 북방복음화를 이룩해야 합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중심이 되어 이슬람의 복음화를 이룩해야 합니다. 이제 한국 선교사들을 통해서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든 전쟁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있는데 작년에 세계를 놀라게 했던 걸프전쟁은 아랍의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천기가 될 것입니다. 이미 이것이 사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책임을 지고 아랍권 복음화를 이룩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다짐하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몇명의 타문화권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까? 이 문제는 일률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1) 아세아 연합신학대학(ACTS) 의 마린 넬슨(한국이름 나일선, 50세) 교수는 현재 한국에는 54개의 선교회가 있고, 세계 8개 나라에 1천6백45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어느 선교 전문기구에서 각 교단에 "귀 교단에서 파송한 해외선교사는 몇명입니까?" 라고 질의를 하고 얻은 선교사 통계를 집계해 보니 82개국에 7백47명이 됩니다. 이들의 활동을 알기 위해서 모두에게 편지를 냈더니 답장을 보내 준 선교사는 4백명이 채 안되었다고 합니다.
3)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전재옥 교수의 집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는 68개국 1,509 명 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파송하고 있는 9개 교단 선교부와 20개 선교기관의 연간 선교예산은 130 억원 정도입니다(1990년). 같은 해 우리나라 술 소비량은 26억9천2백90만 리터로 그 가격은 출고가 기준으로 2조5천억원입니다. 선교비의 2백배에 가깝습니다. 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 더 자세히 밝혀야겠는데 1990년에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맥주 61병, 소주 46병을 마셨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중앙일보 1991. 8.13).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술 소비량만 급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이 선교사의 숫자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숫자가 매우 적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만 교회, 천만 신도를 등록상표처럼 내세우는 한국교회에서는 타문화권 파송선교사가 고착 2천명 미만, 그야말로 코끼리 비스켓입니다. 태평양 바다에 물 한 바가지 격입니다. 한자의 창해일속(滄海一粟)이란 말이 있습니다. 넓은 바다 속에 좁쌀알 하나라는 뜻입니다. 한국교회의 타문화권 선교사 파송현황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인 것 같습니다. 구우일모(九牛一毛)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는 60년대, 70년대에는 10년에 두 배씩 성장했습니다. 80년대 후반까지도 12.5%의 성장률로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80 년대 말 이후 성장이 둔화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선교를 등한시한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지금 세계는 선교사를 부르고 있습니다. 특히 제 3세계가 그렇습니다. 올 1월 1일자 국민일보에 보면 지금 현재 지구상에는 2초마다 5명이 태어나고 있는데 그 중 3명은 아시아인이라고 합니다. 학자들은 21세기 초에 세계 인구를 63억명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케냐 같은 나라는 인구 50% 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인구증가의 90% 이상이 제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세계인구는 1억6천9백명, 현재 총인구 7%에 해당합니다.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지구촌에 5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걸렸고 매주 25만명의 5세 미만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위도 10-40도 사이가 주요 선교대상지역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샤론 캠프와 요셉 스파이라는 학자는 세계 1백30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조건에 통계적 등급을 매겨, ‘인간의 고통지표’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고통지표는 수입, 인플레이션. 새로운 직장에 대한 요구, 도시인구 압력, 유아사망률, 영양공급. 깨끗한 물, 에너지 소비랑, 성인 식사율. 개인적인 자유에 따른 것인데 ‘고통지표’가 높은 나라일수록 기독교 인구가 적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선교대상국도 지정이 됩니다.
이 지표에 따르면 모잠비크, 앙골라, 아프가니스탄. 차드. 말리 등이 생활조건이 가장 악하며, 스위스,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가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평가되고 있으며, 한국은 46번째라고 합니다.
위도 10-40의 Window에 보면, 회교도 10억. 블교 3억, 힌두교 7억, 공산주의 12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33.3%인 17억9천5백만이고 국가별로는 이슬람국 28개국, 불교국 8개국, 힌두국 2개국, 공산주의국 6개국 등으로 4대 비기독교국가들이 이곳에 있어 선교사들의 비자를 제한하는 나라들이 대부분입니다.
한 중요 선교전지는 2천년에는 서 선교사의 수는 13만1천7백20명, 제3세계 선교사의 수는 16만4천2백30명에 이를 것으로 천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미국이란 거대한 나라에 세계 선교를 크게 기대했고 또한 미국은 그만한 공로를 세운 나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영국과 미국의 기독교 지도자와 성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가오는 21세기에 우리는 세계선교를 얼마나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까?
한때 미국인은 세계의 58%의 부를 가졌고 78%의 보험을 소유했고. 60%의 자동차를 소유했었습니다. 지난 2백년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로서 정말 많은 일들을 했지만 앞으로 2천년대에도 과거만큼 일할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의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New York시 청년 가운데 92%는 교회를 나가지 않습니다.
1) 매 34분마다 범죄사건이 발생
2) 매 22초마다 살인사건이 발생
3) 매일 1천9백94명의 사생아가 태어납니다.
4) 매일 3만9천1백9 파운드의 마리화나가 미국으로 들어옵니다.
5) 매일 24명이 AIDS로 죽습니다,
6) 매일 유아식품 사용액 $2,054,795.00
7) 매일 고양이식품 사용액 $5,845,205.00
8) 매일 개식품 사용액 $8,550,685.00 입니다.
성경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7-8)"고 했습니다.
한국이 미국과 같은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하겠는데, 경제성장과 함께 한국사람이 1년에 버리는 음식을 강으로 환산하면 8조억원이라 하며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술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러하리로다 (시 9: 17)"
지금 주후 2천년까지 이 지구상의 모든 종족들에게 빠짐없이 복음을 전하자는 ‘주후 2천년 운동“ (AD 2000 Movement)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그 방안 가운데 하나가 오십일조 운동입니다. 성도 50명당 타문화권 선교사 한명씩 지원하자는 것입니다. 이 계산대로 한다면 한국교회는 20만명의 해외선교사를 파송하거나 도와야 한다는 답이 나옵니다. 성도 50명당 타문화권 선교사 한명이라는 계산은 서구 산업사회국가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만 여하튼 한국교회의 타문화권 선교사 파송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빈약합니다.
한국교회의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교파가 너무 많은 것. 신앙과 생활의 분리, 교역자의 자격문제, 무인가 신학교, 개교회주의 등등 여러가지를 듭니다만 이제는 그 답이 바뀌어야 합니다. 선교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선교사 파송이 빈약한 것, 이것이 한국교회의 제일 큰 문제거리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에 모였습니다.
2. 한국교회의 선교활동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문화권 선교사의 숫자 하나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 선교활동의 실정입니다. 아까 어느 선교 전문기구에서 각 교단에 질의해서 얻은 선교사 총수가 7백47명이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그 가운데는 동질문화권 선교(교포선교) 종사자로서 해외선교의 범주에 넣기 어려운 경우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3년전에 현지교회의 초청으로 외국에서 원주민 상대의 전도집회를 가진 일이 잊었습니다. 그곳에 한국선교사들이 십여명 수고하고 있는데 이 분들이 그 집회에 왔습니다. 이 분들을 한 자리에 모아 식사를 대접었는데 놀라운 소리를 그 자리에서 들었습니다, 최소한 몇년 이상 그곳에서 선교활동올 하고 있는데 한국 선교사들이 한자리애 보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는 것입니다. 각기 자기를 파송하고 후원하고 있는 교단과 단체에, 또는 하고 있는 일에 너무 집증하다 보니 서로 만날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선교신학의 통일된 정립을 위해, 선교정책협력을 위해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를 이 자리에 부르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여시고, 지혜를 주시며, 가슴을 뜨겁게 하사 이같은 목표들이 잘 이루어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남부 인도 순회전도의 개척선교사 Thomas Ragland는 1858년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분이 세상을 떠나고 40년 뒤 한 선교사가 Ragland 선교사의 훈련을 받아 목사가 된 사람에게 Ragland 선교사의 훈련방법을 물어보니까 “그 분은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참으로 깊이 사랑했습니다. 예!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했던 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합니다.
3. 선교의 부흥을 위하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교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부흥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장로교의 산실은 스코틀랜드입니다. 그러나 오늘 세계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는 유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서울에 있습니다. 감리교회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감리교회는 서울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도 미국에서 시작했지만 그 교단에서 제일 큰 교회는 서울 여의도에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부흥할 수 있었습니까? 한국교회는 더욱 부흥하여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선교부흥의 전제는 기도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역하 7: 14)"
가. 기도는 부흥의 절대 요소입니다 - 42년전 6.25가 얼어났을 때 한국은 국토의 전부를 거의 공산국에게 빼앗겼습니다. 이 때 백척간두의 조국을 위기에서 구한 것은 기독교인들의 기도였습니다.
나. 기도는 부흥을 준비해줍니다 -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9-11)“
a) 마르틴 루터 - 그가 속해 있는 천주교의 가르침에서 만족함을 얻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인 경건에 대한 그의 깊은 요구가 위댄버그 대학의 신학교수로 있을 때 많은 기도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1512년 겨울 마틴 루터는 위댄버그 수도원 탑 꼭대기에 있는 조그만 방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를 깊이 깊이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종교개혁은 기도와 성경연구의 시간을 보낸 후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성경의 진리를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구원은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러한 발견은 루터가 많은 고뇌 가운데 기도를 했던 결과였습니다.
b) 요한 웨슬레 - 영국 엡워드 영국 국교회 목사의 아들인 그는 당시 영국교회의 형편에 대해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주 나쁜 조건 속에서 떼지어 다니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심하게 동요되었습니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9시 15분, 그는 한 조그만 모임에서 사회자가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두를 읽고 있을 때 진정한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실로 그는 거듭났고 이로써 요한과 찰스, 그러고 조지 휫필드와 함께 많은 대중들에게 복음전파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새로 기름부은 바 된 종들의 설교를 들으려고 모여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감리교 부흥을 낳게 했습니다. 이것 역시 기도에 힘쓴 결과입니다.
c) 찰스 피니, 드와이드 무디, 토레이 - 19세기가 끝날 무렵 하나님은 이들을 지도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지속적인 기도와 금식으로 생명의 기름부으심을 받아 설교하였습니다. 웨슬레의 가르침은 영국에서 18세기 프랑스혁명과 갑은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었고, 결코 이 새로운 부흥의 기운이 정치 사회적 변화를 가져다 주어 국제적인 파괴의 재난을 피하게끔 해주었습니다.
기도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고민 대신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끌어야 합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변화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나를 변화시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로 들어가기 전 많은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총 기나긴 시간 기도하러 나가셨고 때로는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한국교회를 가리켜 기도하는 교회라고 말합니다. 이련 기도운동은 지금 해외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를 보고 배운 동남아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동남아 여러 교회에 산 기도원이 생기고 새벽기도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한 번 내 친한 친구 목사님인 조용기 목사님께 질문한 척이 있었습니다.
‘나는 주일 설교를 하면 5천명만 모이고 조목사님은 50만명이 모이는가? 교육도 조목사님 만큼 받았고, 나이도 더 많이 먹었는데"
조목사님 대답하기를
“김목사님은 하루 몇 시간이나 기도하십니까?"
“약 30분씩 기도합니다"
“나는 5시간씩 합니다" 나는 그때서야 그 비결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자리 옆에서 무릎을 꿇고, 우리의 이 세계에 하늘에서 보내주시는 부흥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도록 밤새워 기도하는 단순한 믿음을 가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전도자들인 것입니다.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2) 말씀전파는 선교부흥에 대한 계획입니다.
1963년 11월 22일, 한 사람이 미국 텍사스 달라스 거리에서 총탄에 맞아 숨졌습니다. 두시간 안에 전세계 사람들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알았습니다. 전세계는 이제 그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2천년천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이 갈보리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의 반수 이상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전하지 않고. 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에 케이프 케네디에서 미국은 달나라에 인간을 보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서울 거리에서 그 사람이 누구였느냐고 물어 보십시오. 그들은 주저없이 말할 것입니다. 그는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라고. 그러나 그들에게 병거를 타고 하늘에 올라간 사람이 누구였느냐고 묻는다면 그가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라는 대답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이야기를 못 들었기 때문입니다.
무하메드 알리와 조 프레이져와의 타이틀 매치가 벌어졌을 때, 한국은 인공위성을 통해 생중계를 했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고등학생들에게 설교할 때. 누가 이겼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두가 조 프레이져가 이겼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양치는 목자 다윗과 거인 골리앗과의 싸움은 누가 이겼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왜입니까? 그 소식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 News는 금방 알면서, 복음의 소식을 모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하는 자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추가 그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할 것입니까?
“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우리에게 부흥운동이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부흥을 간구하지 않는다면 부흥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부흥을 찾지 않는다면, 이 낡은 세계는 곧 완전한 혼돈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정책하며 경계하며 전하라 (딤후 4:2)"
하나님은 그의 말씀이 축복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늘과 땅은 없어지나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하여 (히 4:2)"
미국 초기의 역사에서 뉴잉글랜드의 획기적 부흥을 가져온 것도 요나단 에드워드의 말씀에 대한 위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말씀의 가르침은 삼천명이 회개하고 믿는 역사를 가져 왔습니다.
시편 기자는 119편 103절과 105절에서 ”주의 말씀의 맛이 제게 어쩌 그리 단지요. 제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세계를 부흥케 하기 원한다면 마땅히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3-24)"고 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거룩하고 성경의 교훈은 영원하며 성경의 역사는 확실하고 성경의 약속은 불변이요. 그리스도가 성경의 주제이며 제목이요 성정용 우리의 유익을 위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경의 목표이고 지혜롭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 하고 안전하기 위해서 성경을 믿어야 하고 거룩한 자가 되기 위해서 성경을 말씀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는 선교는 가치가 없습니다.
3) 성경은 선교부흥의 통로입니다.
가끔 기독교인의 행실로 인하여 거룩함이 가리워지기도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벧전 1:16)”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을 내어 활동을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가장 최선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영위해 나가는 것이 부흥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열심히 활동만 하는 것을 가지고는 결코 영혼 깊숙한 영적부흥을 가져오지 못했지만 지난 수세기 동안 거룩하고 올바른 삶을 통하여 커다란 깨우침(자각)을 가져왔습니다.
가. 우상숭배로부터 깨끗해야 합니다. – 우리는 수십가지의 우상숭배적인 제사, 미신 등에 둘러싸여 그것들과 타협하기 쉬운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편리한대로 우리들의 신앙지조를 양보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적 관습과 전통들이 거룩하게 살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무시할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나. 비도덕적인 생활로부터 깨끗해야 합니다.
다.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깨끗해야 합니다.
4) 찬양신앙은 선교부흥에 우선입니다.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저를 칭송할지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시 117:1-2)”
저는 오늘날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이처럼 큰 축복을 내려주시는 이유는 바로 한국의 크리스천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5) 핍박은 선교부흥의 선결조건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사울이 스데반의 죽음에 동의하는 것을 봅니다. 그당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들에 대한 핍박은 참으로 심했습니다. 어느 곳이든지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서 뿔뿔이 흩어져서 다녔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핍박이 시작되었을 때 사도들은 흩어져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받고 있는 엄청난 축복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백여년 전 카톨릭의 선교사들이 왔습니다. 그리고 약 1백여년 전 감리교와 장로교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는데 그들은 커다란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쇄국정책을 쓰는 나라였던 한국은 외국인들이 이 나라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국에 들어오려 했던 토마스 목사는 대동강변에서 순교당했습니다.
또한 일본의 핍박으로 흘린 순교자의 피가 부흥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제암리 가까운 수원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제암리 교회는 모두 잘 아시는대로 삼일운동 직후에 일본군대가 마을 주민들을 교회에 몰아넣고 문을 닫아 걸고 불을 질러 수십 명을 태워 죽인 곳입니다. 제암리 교회의 수난은 한국교회가 받은 핍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1960년대 초 일본인 목회자들이 한국에 와서 제암리를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불에 타 없어진 그 교회자리를 돌아보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비석을 보면서 애통과 회개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 목사들은 일본으로 돌아가서 불 타 없어진 바로 그곳에 교회를 새로 건립하기 위한 모금활동을 하였습니다. 결국 1971년 9월 새로운 교회 하나가 그곳에 헌당되었습니다. 그 헌당식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큰 영광이었습니다. 말씀이 선포되고, 기도가 드려지며, 감사패가 증정되었습니다. 예배를 마치면서 그 때 참석한 일본인 사절단들은 모두 일어나서 한국인 대표들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그들은 서로 포옹하며 함께 울기 시작했습니다. 서로를 용서하고 지난날을 잊기로 약속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복음이 능력인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 경이 미국 국민들에게 “우리에게 일할 도구를 달라. 그러면 우리가 이 전쟁을 끝장내리라”고 호소했던 것처럼 오늘 세계 각국에 나가있는 선교사들은 우리들을 향해 “우리에게 도구를 달라. 그러면 우리가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리를 듣기 위해, 그들에게 도구를 주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니라 (마 28:18-20)”고 말씀하신 주님! 이 대회를 축복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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